척사위정, 개화, 민족종교와 민중운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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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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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척사운동의 歷史(역사)적 전개과정을 보면, 1860년대는 통상(通商) 반대운동, 척화주전론(斥和主戰論)으로, 1870년대에는 개항(開港) 반대운동으로, 1880년대에는 개화(開化) 반대운동으로, 1890년대에는 항일의병운동(抗日義兵運動)으로 발전하였다. 그 배척의 대상은 처음에는 청(淸)나라 였고, 그다음은 서양(西洋)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개항 이후에는 일본(日本)까지 이에 포함되었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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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위정운동은 조선왕조의 전제주의적(專制主義的) 정치체제, 봉건적(封建的) 경제체제, 신분(身分) 차별적(差別的) 사회체제, 화이론(理論)적(華夷論的) 세계체제를 유지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대원군의 척사위정정책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1866년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에 일어난 신미
대원군의 내정(內政)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에 반해서 외교(外交)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흔히 대원군의 외교 정책을 쇄국정책(鎖國政策)이라고 불러 왔다. 하지만 대원군 집권기에 여전히 中國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었고, 일본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척사위정 사상은 의리(義理)와 도덕성(道德性)을 강조하는 우리의 유교(儒敎) 문화를 정(正)으로 수호하고,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서양과 일본 문화를 사(邪)로 규정하여 배척했다. 결과적으로 척사위정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처리해야할문제 중에서 반외세 자주 운동으로서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반봉건 근대화 운동으로서는 부정적 측면을 가진 민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성리학적 세계관에 의해 중화를 우러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화양이(尊華攘夷), 바른 것을 높이고 이단을 물리친다는 숭정벽이(崇正闢異)의 명분론(名分論)을 계승하는 것이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대원군 정권의 척사위정 정책
대원군의 외교정책은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衛正] 이를 위협하는 사악한 세력을 배척하는[斥邪] 정책, 즉 척사위정정책(斥邪衛正政策)이었다. 그리하여 국왕 고종(高宗)과 政府의 개화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쇄국이란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맞지 않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술정보(주), 『저항과 지향』, 박진철 지음, p15
척사위정, 개화, 민족종교와 민중운동 사상
척사위정사상은 첫째 바른 것 [정(正)] 으로서의 성리학(性理學)과 성리학적 사회체계 및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쇄국(鎖國)이란 말은 나라를 잠근다는 뜻으로 외국과 일체의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사악한 것 [사(邪)]으로서의 서학(西學)과 서양문물 그리고 서양 세력 및 이들을 따라 배우는 일본 세력을 배척하자는 것이다.